
우석훈 저
우석훈 이라는 이름 석자가 그닥 익숙한 이름은 아니었다. ‘88만원 세대’를 쓴 작가라는 게 내가 아는 전부 게다가 나는 읽지도 않았다. 이미 청춘은 훨씬 지난 세대 였기에.
그런데 지금 이분의 책을 두권째 읽고 있다. 나의 취향에 맞다. 글을 지리하게 쓰지도 않고 모르는 혹은 알고도 외면했던 사실들을 일깨워 준다고 생각하여 출퇴근 시간에 조금씩 조금씩 재미있게 읽었다.
경제학자 우석훈 책을 읽게 된 것은 나에게도 큰 슬픔과 허망을 주었던 노회찬 의원 죽음에 대한 그의 글이 많은 조문들 중에서도 가장 내 맘에 와 닿았던 때문인 거 같다. 그 이후로 그의 블로그를 등록하여 주기적으로 읽게 되었고 더 나아가 책을 사서 읽게 까지 된 거 같다.
늦은 나이에 두 아이 양육을 하게 되면서 알게 되는 혹은 깨닫게 되는 것들을 들려주고 한발 더 나아가 사회 구조 상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개선안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특히 아이들에 대한 생각과 행동은 나로 하여금 많은 부끄러움과 후회를 하게 만들었다.
우리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가? 아니 어떻게 해야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나의 의문과도 맞닿아 있는 책이기도 하였다.
부모가 먹고 살만 해서 “ 다른 집은 어떻든 너는 넉넉하다.” 라고 가르치는 것은 도련님의 교육이다. 하지만 세상엔 여러 이유로 한 끼를 제대로 먹기 어려운 어린이들이 많다. 이걸 이해하는 것이 시민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시민’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기본적인 상식을 갖춘 사람, 나는 그렇게 아이들을 키우는 목표를 정했다.
‘기본적인 상식과 시민적 감수성을 갖춘 어른 키워내기.’ 이게 한국 교육이 가장 못하는 것이다.
아내가 최근에 나에게 들려준 다윈에 관한 애기가 있다. 같이 자란 누이들이 어린 다윈에게 백인이건 흑인이건 인간은 다 같다고 얘기 해 줬다는 것이다. 이게 지금처럼 ‘상식’ 으로 자리 잡는 데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지식의 밑에는,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 깔린다. ... 중략 ... 더 부강해진 나라에서는 꿈보다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소양과 양심을 심어 주는 게 더 중요하다. 그 소양의 바탕 위에 올라와야만 지식은 비로소 창조적인 것이 되어 힘을 얻는다. 이제 막 세계를 지배하려는 대영제국의 한가운데서 다윈이 누나들에게 받았던 가정 교육은 세계 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 같은 것 이었다.
3월 초에 몇 년 전에 EBS 교육 다큐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아들이 다녔으면 하는 막연한 생각만 하고 있던 이우학교 설명회에 갔었을 때 학교장의 학교 소개 PT에서 하는 말을 듣고 왠지 눈물이 나서 엄마들이 훨씬 더 많이 참석한 강당 맨 앞자리에서 눈물을 감추려고 애썼던 순간이 새삼 떠올랐다. 그래 나도 내 아이를 이렇게 키우고 싶다. 자기만 아는 공부만 잘 하는 떠 먹여 주는 것 만 먹지 않는 ‘비글호 항해기’를 쓴 찰스다윈처럼 공동체 의식이 있는 상식적인 어른 말이다.
어른들이 마음대로 상상하고 규정한 것과 달리, 아이들의 세계에서 산타클로스는 때 되면 선물이나 주는 그런 ‘달달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가 아이의 속 마음을 잘 알고 있을까? 슬픈 일이지만 잘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이미 아는 것들이나 혹은 ‘이랬으면 좋겠다’는 상태에 아이들을 맞추려고 한다.
아 뜨끔 하다. 왜 아이를 늘 못마땅하게 생각 했는지 가 명확해지는 순간 이었다. 내 기준에서 아이를 판단한 것이다. 아이의 속마음은 무시 한 채 말로는 합리적이고 정 많은 아빠처럼 굴었지만 폭력으로 억압하고 막말하고 무엇보다 같이 놀아준 기억이 거의 나지 않을 만큼 무관심하고 무뚝뚝한 아빠였다. 읽으면서 미안함 때문인지 눈시울을 몇 번 붉혔던 거 같다. 어느새 중학생이 된 아이를 보면 미안하다 가도 반항하는 모습을 보이거나 공부를 게을리 하는 모습을 보면 참지 못하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인 아빠로 돌변한다. 그러지 말아야 하는 데도 쉽게 바뀌지는 않는다.
아들을 더 아들 답게, 남자를 더 남자 답게, 이런 건 모두를 불편하면서도 불운하게 만드는 육아라고 생각한다. 나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 놓고, 뭔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내려 놓았다. .... 중략 ... 살면서 중요한 게 뭔지, 나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 아이가 아프고 나서야 ‘진짜 중요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배우는 지식들은 참 허무하다. 결국은 맞아 봐야 아픈 줄 알게 되니 말이다. 이게 다 욕심 때문이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이지만, 사람의 욕심은 자신의 눈을 죽인다. 그리고 부모의 허망한 욕심은 자녀의 미래를 망친다. 행복은 욕심 많은 사람들에게는 절대로 오지 않는다.
아이가 좀 더 어렸을 때 이 책을 읽었다면 더 나은 아빠가 될 수 있었을 까? 더 늦기 전에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아이에게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다. 아들은 그게 웃기고 어색한지 자꾸 웃기만 하다가 점점 적응 하는 모습이다. 반말을 하지 않으니 막말이 조금은 줄어드는 거 같기는 한데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 존중 해야겠다.
작성일 : 2019. 3. 29. 15:40 (http://igotoo.tistory.com 에서 복사)